섹스돌 - <부제 : 피노키오의 눈물 Part 0> 7
단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순간... 하루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가슴에 묻어야 했던 하루...
안돼... 절대 안돼... 수란만큼은... 수란만큼은... 꼭 지키고 말리라...
단영은 다짐의 다짐을 거듭했다.
“정말 좋지 않아요. 정밀 검사와 더불어... 골수검사도 해야합니다. 검사는 3일정도 걸릴 겁니다. 일단은 대략적으로 병명을 예상하고 있지만... 검사가 끝나고 정확한 결과를 보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입원... 꼭 해야하나요?”
“...네... 정말 좋지 않아요. 불길한 말씀을 드려 죄송하지만...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 말씀은...”
“솔직하게 말할께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만큼 심각해요.“
쾅
“아... 안돼... 어흐흐흑.....”
단영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렀다.
수란의 죽음을 언급되자 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얻은 딸인데...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딸인데... 죽을병이라니... 단영은 용납할 수 없었다.
“입원하시고 아이에게 좋은 말을... 희망찬 말을 해주세요... 어머니만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증상이 심각하지만...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가지면... 증상이 호전될 수도 있어요.“
“어흐흑....”
의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영은 넋이 나간채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어머님... 진정하시고... 어머님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더욱 마음을 다잡으셔야 해요.“
“선생님... 선생님.... 우리 수란이... 살려주세요... 제발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사는 으레 그렇듯... 온 힘을 다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수란이.... 우리 수란이...”
단영은 계속해서 울었다.
“어머님...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서 아이곁을 지켜주세요. 어머님도 힘드시겠지만... 지금 제일 아프고 힘든 건... 아이입니다.“
“수란이.... 안 돼...”
단영에게 의사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눈물이 범벅된 그녀의 눈은 이미 혼이 나가있었다.
의사가 아무리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우당탕
단영은 수란을 찾으며 일어섰지만...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엄청난 충격에... 단영은 몸을 가눌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김간호사...”
“네 선생님...”
문을 열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가 들어왔다.
“부축좀 해줘요...”
의사와 간호사가 단영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어머님... 걸으실 수 있으시겠어요?”
“안돼... 수란이...”
여전히 혼이 나간채 수란만 찾고 있는 단영....
“이보세요!”
의사가 큰 소리로 고함쳤다.
그제서야 의사를 똑바로 쳐다보는 단영
“정신차리세요... 어머님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지금 가장 힘든 것은... 어머님 아이에요... 어머님이 이러시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실 생각입니까?“
“아...아니요... 죄송합니다...”
“저에게 죄송할 것 없습니다... 지금 어머님이 당장 해야할 것은... 아이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긍정적인 생각을 고취시키는 것이에요... 할 수 있으시죠?“
“네... 네.... 할 수 있어요...”
무섭게 끄덕이는 단영... 의사의 말대로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었다.
무너져 가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앞에서 내색하시면 안됩니다... 어머님이 더 꿋꿋이 버티셔야해요...“
“네... 감사합니다....”
단영은 팔을 잡아주는 의사와 간호사의 부축을 거부하고는 제 발로 걸어나갔다.
“조심해요...”
위태로운 그 모습에 간호사가 얼른 다시 팔을 붙들었다.
“자 여기에서 조금 쉬다 가세요...”
“안돼요... 수란이한테 가야해요...”
“지금 아이에게 어머님 모습을 보이면... 아이가 걱정할꺼에요... 그러시면 안돼겠죠...“
“....”
엉망이 된 단영의 모습... 눈물 얼룩진 화장... 붉게 충혈된 눈...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면... 수란도 아이이지만... 제 엄마의 이상을 눈치챌 것이 분명하다...
절대... 그 모습을 보일 순 없다...
“앉으세요... 제가 녹차 한잔 타드릴테니... 조금 진정되시면 가세요...“
“...감사합니다...”
간호사는 수란을 대기실 의자에 앉혀주고는 프론트로 가버렸다.
그리고는 잠시후 따뜻한 녹차를 한잔 타와서 단영에게 건넸다.
“자요...”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눈물이 글썽이는 단영...
“힘내세요...”
“네...”
간호사의 말에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불길한 이 쿵쾅거림이...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수란이가... 수란이가 잘못되면 어쩌지... 정확한 병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 의사는 심각하다고 말했고... 심지어 혹여나 죽을 지도 모른다고... 당장 입원해야한다고 말했다...
의사의 소견에선 긍정적인 말이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암울하며 상황은 비관적이다.
섹스돌 - <부제 : 피노키오의 눈물 Part 0> 8
어떻게 얻은 아이인데... 단영이 배 아파 낳았고... 허무하게 보낸 첫 아이와 다르게 제 손으로 수발을 자청하여 애지중지하며 길렀다.
못다한 모유수유하며... 아이가 잠 못들면 밤새 곁을 지키며 자장가도 불러줬다.
정말 지극정성... 수란과 함께한 5년간... 정말 모든 것을 수란에게 신경을 쏟았다.
자신에게 이런 모성애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단영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모든 것을 아이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 때문에 기적이 약간은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 피붙이를 소중히 대하는 모습에 이해하며 넘어갔다.
정말 어떻게 기른 아이인데... 순간 수란이 잘못되는 상상을 했다.
단영은 오싹하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절대로 수란 없이 살 수는 없다.
작고 꼬물대던 아이는... 어느새 단영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쿵쿵대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심장도 크게 뛰었고... 아이의 숨과 동시에... 그녀의 숨도 살아났다.
이전에는 정말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란이 태어나고... 정말 단영 역시 다시 태어났다.
단영이 수란을 잉태했지만... 수란으로 하여금 단영도 새생명을 가지게 된 셈이다.
“수란아...”
수란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첫 모유수유... 자신의 품안에서 꼬물대는 그 모습에 마음속 뭔가가 찌르르 하고 울렸다.
처음 눈을 떳을 때... 맑고 그 투명한 눈동자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처음 말문이 트였을 때.... 엄마라는 단어가 그렇게 가슴을 쾅하고 때릴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기적이었고 모든 것이 행복이었다.
그런데 그 기적과 행복에 금이가 버렸다.
지켜야 한다.
내 아이... 수란을 살려야해... 어떻게... 어떻게 해야하지...?
단영은 지금 자신이 해야할 것을 궁리했다.
의사의 말처럼 아직 모든 것이 분명하지는 않다.
단순히 혈액검사로는 모든 것을 알 순 없고...
다만 그 수치가 비 정상적으로 낮아 위험하든 경고...
지금 당장 입원을 하고 눈을 뗄 수 없고...
혹시나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
아이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라는 말...
아이를 위해 해줄수 있는 것이 많지 않자
단영은 무력감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하지?
정말 어떻게 해야하지?
막막하고 암담했다.
평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했더라...
“아...”
그래 남편... 단영은 가정의 대소사를 기적의 결정에 많이 의존했다.
이번에도 남편은... 흔들리는 단영을 대신해 현명한 결정을 해주리라.
단영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뚜르르...
바로 핸드폰을 열어 기적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수화음 끝에 기적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 여보... 지금 바쁜데... 조금 있다가 전화하면 안될까?
“여보... 흑....”
기적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새 그쳤던 눈물이 다시 터져나왔다.
-왜 그래? 자기 울어? 무슨일인데...
“여보...오빠....”
-잠시만...
단영은 기적이 듣거나 말거나 핸드폰을 부여잡고 울었다.
-자세하게 말해봐... 어떻게 됐어?
“오빠... 우리 수란이... 위험하대...
-뭐? 무슨 병인데...
“아직 모른대... 정밀 검사 해야하고... 지금 당장 입원하래.... 어떻게해? 우리 수란이... 불쌍해서 어떻게해....“
단영이 횡설수설하자 기적이 차근하게 물었다.
-몰라? 그런데 입원? 천천히 말해봐...
“흐윽... 혈액검사를 했는데... 수치가 정말 낮대... 당장 어떻게 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낮대... 그래서 입원하래...“
-병명은...
핸드폰 너머로 기적의 음성도 떨리기 시작한다.
“아직 정확하게 진단을 할 수 없대... 그래서 정밀검사랑... 골수검사 진행하고... 3일 후에 알려준대... 어떻해.... 우리 수란이... 죽을지도 모른대...흑...“
-.....
기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정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이가 비록 맥아리가 없고 잠이 많다지만...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은 전부 잠이 많지 않던가... 맥아리가 없이 비실대는 것은 아이가 그저 몸이 약한 탓이라 여겼다...
그런데 병이라니... 죽을지도 모르는 병이라니... 기적은 그 병이 자신의 무관심 때문에 생긴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단영아...
“어떻해... 우리 수란이... 흑... 불쌍해서...흑.... 어떻해....“
이제 단영은 핸드폰을 부여잡고 다시 통곡하기 시작했다.
불안함과 서러움 그리고 제살이 깍여나가는 듯한 고통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진정하고.. 내말 들어 단영아...
“오빠... 우리 수란이... 어떻하지? 정말 어떻해...“
단영은 기적의 말을 듣지 않았다.
기적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 암울하며 비관적인 상태에 잡혀먹혔다.
주위가 어둡고 추웠다.
그저 불길한 생각만 들고 눈물만 흘렀다.
-편단영!
핸드폰 너머로 기적의 고함이 들렸다.
“응....흑...”
-진정하고... 내말 잘들어...
“응... 오빠...”
기적의 외침이 단영을 깨웠다.
가출해버린 정신이 잠시나마 돌아왔다.
-정확한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서... 아직 모르는 일이야... 요즘엔 돌팔이들이 많아서... 병원도 여러군데 다녀가면서 비교해야해... 별일 없을 거야...
“그렇지? 별일 없겠지?”
떨리는 목소리로 단영이 말했다.
검사가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기적의 말...
의사가 돌팔이라는 기적의 말...
단영은 기적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단영의 기억속에 기적은 언제나 맞았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굳게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너무나 암울해 낙관적으로 보는 말에 눈이 멀어버렸다.
그래서 달래는 기적의 말이 떨리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기적도 지금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단영에게는 아닐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스스로 이미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네가 해야할 일은... 우리 수란이 곁에 있어줘야돼... 혹시 모르니까... 빨리 입원수속절차 밟고...
“수란이에게... 뭐라고 말하지...”
-자세하게 말하지 말고... 그냥 검사 때문에 있어야 한다고 그래...
“알았어...”
-나도 오늘 일 끝나는 대로... 병원으로 갈게... 병실 잡히면... 문자로 남겨줘...
“응....”
-정신차리고... 절대로 수란이 앞에서 울지마... 아이들이 더 그런 쪽으로 민감해... 우리 수란이... 눈치가 좀 빠르잖아... 그리고 속도 깊고... 지 엄마가 울면... 뭔가 잘못된줄 알고... 제 속으로 끙끙 앓을 거야... 알았지?
“응...”
-난 우리 단영이 믿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이럴 때 혼자두어서 정말 미안해... 여기 사장님한테 말하고... 빨리 정리하고 갈게...
“아니야... 그럼 내가 미안해... 오빠도 힘든데... 내가 철없이 굴었어... 미안해...“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단영이 정신을 수습하고 말했다.
-그래...고마워.. 이해해줘서... 그리고 사랑해... 오늘은 정말 빨리 끝내고 갈게....
“응... 오빠 나도 사랑해....”
섹스돌 - <부제 : 피노키오의 눈물 Part 0> 9
기적과의 통화가 끝났다.
어둡고 막막하기만 하던 길에 빛이 보인다.
단순히 남편과의 통화.
그저 단영은 울고 징징거림에 불과했지만... 힘들 때 기둥이 되어주는 기적 때문에 단영은 힘을 낼 수 있었다.
핸드폰을 잠시 바라보며 눈물을 닦았다.
기적의 위로가 정말 힘이 되었다.
기적의 말대로 정말 검사의 실수 일 수도 있다.
의사가 상황이 암울하다고 했지만... 정작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대로 희망을 버릴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영은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했다.
기적의 말이 떠올랐다.
-수란의 곁에서...울지말고... 곁에 있어주기... 그리고...입원수속...
입원수속을 해야한다.
수란이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도록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밝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꿀꺽...”
순에 쥐어진 녹차는 금새 식어버렸다.
단영은 차가운 녹차를 꿀꺽 마셨다.
차가운 그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저기 입원하려면 어떻게 하죠?”
수란은 아까 자신을 부축해주던 그 간호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간호사는 넋이 빠진 단영을 걱정스레 바라보다
통화 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을 보고 안심했다.
혹여나 단영이 난리를 피우지 않을까 걱정한 탓이다.
간혹 상황이 암울한 환자의 보호자들이
의사의 멱살을 잡거나 쌍욕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1층 원무과에 가셔서...”
간호사는 단영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나면 응급실에 수혈하고 있던 수란을
병실로 이동시켜 준다는 것.
그러니 입원 신청을 하고 아이를 만나려면
응급실로 가는 것이 아닌 해당 병실로 가야한 다는 것까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고마워요...”
단영은 바로 1층 원무과로 내려가 입원신청을 했다.
6인실은 자리가 없다고 해서 4인실로 잡았다.
그리고 바로 병실에 올라갔다.
병실은 1303호...
병실에는 수란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있었다.
저 아이들도 수란이처럼 아픈 걸까...
단영은 다시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는 병실 앞에서 한번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다.
“엄마!”
간호사의 말대로 이미 수란이 병실에 올라왔다.
팔뚝엔 삽입관이 꼿혀있었다.
특히 수란이 맞는 약은 다른 링겔처럼 투명하거나 녹색이 아니었다.
새빨간 핏빛... 말 그대로 수혈.
누군가의 피를 전해 받는 것이다.
선홍빛 그 핏빛에 단영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수란이 많이 아프진 않았지?”
“으응... 주사바늘이 푹 하고 들어오는데... 조금 아팠어... 그런데 엄마... 나 이거 언제까지 하고 있어야해?“
수란이 팔뚝을 보며 말했다.
주사바늘이 들어가 있는 수란의 팔뚝 주변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많이 아프구나 우리 수란이...”
단영이 수란을 끌어 안고는 팔을 매만졌다.
이 어린 아이가 제 어미가 걱정할까봐 울지도 않고 괜찮은척 하고 있다.
엄마가 되어서 아이의 속내를 모를 수가 있을까...
“아니야... 그런데 이거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헤헤”
“왜?”
“그래야지 영화보러 가지...”
단영은 말문을 잇지 못했다.
방실방실 웃는 수란에게...
너 오늘 죽을지도 모르니까...
이제부터 꼼짝없이 병실에서 지내야해...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엄마... 울어?”
“아..아니야...”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흘러나온 것 같다.
단영은 급히 눈물을 훔치고는 표정관리를 했다.
“하품해서 그래... 오늘 엄마가 좀 피곤하네...“
“왜? 어제 잠 못잤어?”
“으응.... ”
어색한 거짓말에도... 수란은 지 엄마를 믿었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품한 것이 아니라 눈물을 펑펑 쏟아낼 정도로 눈시울이 붉은데...
단영의 미소가 평소와 다름을 눈치챌 수 있을텐데...
수란은 어린아이 답지 않게 그냥 모른체 넘어갔다.
“그럼 여기서 코하고 자 엄마...”
그러면서 제 옆자리를 팡팡쳤다.
“그럴까?”
단영은 수란의 옆으로 파고 들었다.
수란이 맞고 있는 수혈이 방해되지 않게 조심스레 누웠다.
“헤헤 좋다.”
단영의 팔베게를 베고 누운 수란은 엄마의 얼굴을 매만졌다.
“어서 코 자...”
“응... 우리 수란이도 코 자자...”
“네...”
그러면서 수란은 단영의 눈을 감겨주었다.
모녀는 병실이지만 오랜만에 다정하게 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
“아...”
잠결에 곁이 너무 허전했다.
뭐하고 있었지... 아무 생각없이 곁을 더듬는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홀로 외로이 남겨진 이 느낌... 5년전... 기적을 만나기 전처럼... 춥고 외로운 느낌... 그 소름끼치는 느낌에 황급히 눈을 떴다.
“여기는...”
수란과 함께 오늘 검사 결과를 들으러 왔다가... 입원을 하고... 함께 침대에 누워....
“수란아...”
수란이 보이지 않았다.
옆에는 언제 갈아입었는지 오늘 자신이 입혀준 옷이 가지런히 개어져있다.
창 밖을 보니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은 상태 시간은 9시가 넘어간 상태다.
이렇게 길게 잠들었나?
수란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부담이 크게 다가온 모양이다.
아이가 사라진 것도 모른 채 잠들었다니...
재빨리 신발을 신고 병실을 나섰다.
이미 다른 아이들은 다 자고 있다.
특히 병수발을 들던 아이들의 보호자들도 옆의 보호자 침대에서 누워 자고 있다.
딱히 물어볼 데가 없던 단영은 무작정 수란을 찾아 나섰다.
13층을 한바퀴 쭈욱 둘러봐도 수란은 보이질 않았다.
어딜 간 거지?불안함과 걱정이 마구 솟는다.
애가 병원 밖으로 나간 건 아닐까?
초조한 마음에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올라온다
1...2....
한층 한층 올라갈때마다 더 초조해진다.
엘레비이터는 왜이렇게 느리담...
그리고 중간중간 설때마다 수란이 더 걱정이 된다.
섹스돌 - <부제 : 피노키오의 눈물 Part 0> 10
띵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렸다.
“어? 엄마!”
“어디갔었어! 수란아...”
문이 열리자 환자복을 입고 있던 수란이 냉큼 품에 안겼다.
낮에 맞고 있던 수혈팩도 사라졌다.
“아빠랑 요 앞에 공원갔다가 왔어!”
그제야 뒤에 서 있던 기적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 어떻게...”
일이 바빠 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기적이 여기 서있다.
“일 빨리 마치고 왔어... 아까 6시쯤 왔는데... 너무 곤히 자길래 깨우지 않았어... 수란이가 놀러가고 싶다고 하길래...“
수란이랑 오늘 영화관 가기로 했지만 입원하는 바람에 무산되어버렸다.
집에서 나와 오랜만에 나들이건만 계속 있는 것은 병원안이다.
그러니 수란도 답답했는지 아빠를 졸라 바깥공기를 쐰 모양이다.
“주사는 어떻게 된거야?”
“응! 다 맞았어. 이제 나 안아파!”
수혈을 맞고 나니 수란의 혈색이 더 좋아보였다.
늘 창백하고 파리하던 안색이 아니라 붉그스레한 홍조가 돌고 있었다.
목소리도 활기차고 생생해 보였다.
이 시간대면 늘 졸려서 꾸벅꾸벅 졸던 아이가 뛰놀고 있다.
수란도 제 몸에 힘이 있는 것이 신기한지 방방 떴다.
“재미있게 놀았어?”
“응! 아빠랑 자전거도 타고 음~ 초코우유도 먹고 음~ 재미있었어!“
단영이 못놀아준 대신 기적이 수란과 놀아준 모양이다.
수란의 얼굴엔 재미있다는 표정이 가득하다.
단영은 수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밥은 먹었어?”
“응... 아빠랑 요 앞에서 초밥 먹었어.“
“맛있었어?”
“응! 이거 봐라~”
그러면서 수란은 상의를 펼쳐 배를 뽈록하고 내밀었다.
평소에 곱게 간 음식을 힘겹게 넘겼던 아이가 오랜만에 포식을 한 모습에 단영도 절로 기분 좋아졌다.
건강해진 모습에 낮의 암울했던 의사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기적의 다독임이 기억이 난다.
이렇게 건강해진 아인데... 죽을병에 걸렸다니... 말도 안된다.
불안함을 지워내고 싱긋 웃으며 수란의 손을 잡았다.
“자. 자기꺼도 사왔어. 배고프지?“
“고마워요 오빠...”
기적의 손에 들려있던 것이 초밥세트이었다.
단영과 기적 그리고 수란은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엄마 나 쉬...”
“그래 엄마랑 같이 가자...”
“아니야... 내가 같이 가줄게. 자기는 밥먹고 있어. 배고프지?“
그러면서 기적은 수란을 품에 안고는 화장실로 갔다.
그 사이 단영은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수란과 기적이 먹었던 초밥집이 제법 괜찮은 곳인 것 같다.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온 초밥도 정말 예쁘고 맛있어 보였다.
꼬르륵
먹을 것을 보자 식욕이 당겼다.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진료실 앞에서 녹차 한잔?
그것이 전부였다.
입안에 침이 고여 초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맛있어?”
“응....”
언제 왔는지 기적이 수란을 침대에 내려다 주며 물었다.
코끗을 찌르는 알싸한 와사비와 감식초를 썼는지 적절한 단맛 그리고 생선회의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뤘다.
씹자마자 사르르 녹는 것이 너무 맛있었다.
“내가 엄마 생각나서 사가지고 가자고 그랬어.“
“그래? 수란이 정말 고마워...”
단영은 계속해서 먹었다.
배가고파서 그런지 초밥은 금방 동이 나버렸다.
입구에 있는 쓰레기통에 종이 도시락을 버렸다.
“수란이 안졸려?”
“응! 괜찮아!”
딱 봐도 생기가 넘쳤다.
평소의 골골대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활기찼다.
“헤헤...”
“왜 웃을까 우리 수란이?”
“너무 좋아!”
“왜?”
“엄마랑 아빠랑 이렇게 다 있으니까... 정말 좋아“
기적과 단영은 할말을 잊었다.
사실 셋이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기적이 바쁜 탓도 있지만 저녁 8시만 넘어가면 꾸벅꾸벅 조는 수란의 탓도 컸다.
오랜만의 가족의 시간에 수란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셋은 그 동안 못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
3일은 금방 흘렀다.
낮에는 단영이 수란의 곁을 지키고 9시 넘어 기적이 퇴근하면 단영과 교대했다.
단영은 기적이 프로젝트로 인해 바쁘니 자신이 병원에 24시간 붙어있으려 했지만 기적이 한사코 집으로 보냈다.
그렇게 집에 간 단영은 기적이 입을 옷과 아침식사를 준비해 놓고 아침 일찍 병원으로 왔다.
기적도 출근시간보다 앞선 단영의 교대에 집에 들어가서 씻고 밥을 먹고 출근할 수 있었다.
수란은 병원에 입원을 하고 더 생생해졌다.
힘이 넘쳐나 주체하지 못할 정도라 단영이 감당하지 못했다.
특히 몸에 힘이 넘치자 수란은 빨리 병원에서 퇴원하고 싶어했다.
단영과 약속한 영화관도 가고 싶었고 평소 약한 몸 때문에 나가 놀지 못해서 그런지 놀이터로 나가 친구들을 만들고 싶어했다.
수란의 그런 건강한 모습에 단영도 걱정을 덜었다.
처음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혼비백산한 모습은 사라지고 점점 안정되어갔다.
저렇게 건강한데 죽을 병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사가 잘못 진단한 것이라 여겼다.
“오빠... 오늘 검사 결과 나오는데...”
“응... 알고 있어... 어제 저녁에 회진 돌면서 의사선생님하고 이야기 좀 했어...“
“같이... 갈꺼에요?”기적은 단영을 안으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오늘 회사에 조금 늦는다고 말해뒀어... 그리고 우리 수란이 이렇게 건강한데... 검사가 잘못 된걸 꺼야... 안심해...“
“응... 오빠...”
단영은 기적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 넓은 가슴에 안겨있자니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수란이 다 나아버린 것 같았다.
“수란아... 엄마 아빠... 의사선생님좀 만나고 올게...”
“응!”
수란은 단영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병실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만화영화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단영과 기적은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진료실로 내려갔다.
“아 수란이 보호자분 되시죠?”
“네...”
소아과에 가자 간호사가 단영을 알아보고는 다가왔다.
“수란이 검사 결과 나왔나요?”
“잠시만요... 아... 어머님. 수란이 담당 의사분이 바뀌셨어요. 여기 소아과가 아니라 혈액과로 가셔야 해요.“
“네? 그럼 어디로...”
“바로 위층에 B동에 있어요.”
단영과 기적은 간호사에게 자세한 위치를 듣고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탈 것도 없이 그냥 바로 계단을 이용해 올라갔다.
섹스돌 - <부제 : 피노키오의 눈물 Part 0> 11
“저기...오늘 진료 예약이 되어 있는데요...” 프론트에 있던 간호사에게 말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네 이수란입니다.”
“아! 오셨네요. 교수님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간호사는 진료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앉으세요. 흠...“
진료실의 의사는 단영이 본 그 젊은 의사가 아니었다.
약간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
40대 후반의 남자 의사였다.
“일단 병명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적과 단영이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재생불량성빈혈....입니다.”
의사의 확진에... 기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이 길긴 하지만... 빈혈이라지 않은가?
뭔지는 몰라도 그렇게 심각한 병은 아니라 여겼다.
그와 반대로 단영의 얼굴은 새파랗다 못해 검게 죽었다.
잔뜩 충격받은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안 돼.... 이럴 수는...”
“단영아... 왜 그래...”
단영이 안절 부절하자 기적은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단영은 의사가 말한 이 재생불량성빈혈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냥 새로운 유형의 빈혈이 아닌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인가?
기적의 마음속에서도 불안이 샘솟기 시작한다.
“우리... 수란이... 살 수 있는 거죠?“
단영의 말이 마구 떨린다.
눈물은 이미 흐르기 시작했다.
의사의 손을 와락 잡은 단영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사에게 매달렸다.
“보호자분... 진정하시고...”
“단영아 너 진짜 왜 그래. 너 알고 있는게 있어?“
기적이 다시 한번 물어온다.
단영은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기적을 바라본다.
절망적인 그 시선에... 기적도 전염될 것 같다.
특히 단영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
5년전.
무지개 다리를 건넌 단영의 첫째 딸...하루... 하루가 죽어야만 했던 그 병을 여기서 다시 한번 듣게 되었다.
재생불량성빈혈.
그래... 단영에게서 하루를 앗아가고 그마저도 모자라 이번에는 수란을 데려가기 위해 다가왔다.
“재생불량성빈혈은... 악성 빈혈입니다만...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빈혈과는 조금 그 궤를 달리합니다. 보통의 빈혈이 헤모글로빈의 감소...
철분 부족으로 인해 우리 몸이 필요한 산소공급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 재생불량성빈혈은... 혈액생성 자체에 문제가 생겨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우리 몸에 피는... 골수에서 생성이 되는데... 이 골수에 문제가 생겨 제대로 된 피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병입니다. 적혈구... 혈소판... 백혈구... 등등 모든 혈액 세포를 만드는데 이상이 생깁니다.“
아직 기적은 의사의 말을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단영은 5년만에 다시 듣는 그 설명에 울음만 계속 터트렸다.
“백혈구가 적어지기 때문에 면역체계가 약해집니다. 잔병치례가 많아지고 금방 회복될 병도 심해집니다. 작혈구가 적어지기 때문에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만성피로 그리고 빈혈기... 꾸벅꾸벅 조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가장 문제가 심한 것이 혈소판이 적어집니다. 상처가 나면 쉽게 지혈되지 않고 자연출혈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특히 내출혈의 경우 더 심각해지죠.“
의사가 말하는 모든 증상이 수란의 증상을 가리켰다.
수란이 잔병치례가 심하고 몸이 약한것도... 매일 피곤하고 꾸벅꾸벅 조는 것도... 상처가 났을 때 쉬이 지혈이 되지 않은 것도... 전부 설명이 가능했다.
“발병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이고... 딱히 치료법도 없습니다.“
치료법이 없다는 그 말에 기적도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이대로 수란을 보내야 한다는 말에... 기적의 눈가도 붉어지기 시작한다.
“치료법이... 없다구요?”
“아... 있긴 합니다만...”
치료법이 있다는 의사의 말.
그 말에 기적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 뭐죠?”
“일단 형제가 있으면... 조직검사를 통해 적합도가 맞다면... 골수이식을 할 수 있습니다...“
“아...”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온다.
수란은 외동딸... 형제가 없다.
다시 기적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 외의 경우에는... 부모도 조직검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감이지만... 두분의 적합도는... 수술하기엔 맞지 않습니다...“
“아아...”
단영과 기적 둘은 이틀 전... 의사의 권유에 따라 채혈을 실시 했다.
혹시 모르니 확진이 되고 빠른 치료를 위해 둘의 조직검사도 실시한 것이다.
“아니죠? 선생님... 우리 수란이... 엄청 쌩쌩한데요... 그럴 리가 없어요...“
“환자가... 수혈을 제공받은 경우... 일시적으로 회복되어 일반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간혹 더 건강해 보이기도 하구요...“
“아아....”
수란이 활기찼던 이유가 그래서였다니... 평소에 골골 대다가 병원에 와서 힘이 넘쳤던 이유가 수혈을 받아서 일시적으로 회복되어서라니...
“그래도 아직.... 환자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합니다. 수혈로 인해 수치들도 정상수치까지 근접했구요. 다만 이런 효과들이 점점 감소될 것입니다. 그 전에 조직적합도가 일치하는 대상을 찾아 공여받아야 합니다.“
“오..오래 걸리나요?”
“그건... 확답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가 긴밀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 조직적합도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영영 못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찾는다고 해도... 공여자가 거부를 하면...“
의사의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럼 우리 수란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면역치료를 해야합니다. 언제 합병증이 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수치를 검사해서... 주기마다 수혈을 받아야 하구요.“
“....”
“좋지 않은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병원측에서도 환자의 치료를 위해 사방으로 공여자를 찾고 있습니다.“
섹스돌 - <부제 : 피노키오의 눈물 Part 0> 12
그 뒤로 단영과 기적은 의사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별거 아니라던 기적의 바램은... 꿈이 되어 버렸다.
멍하니 병실에 앉아 있다가 상담시간이 끝나자 나왔다.
“흑....”
명하니 서있던 기적을 단영의 울음소리가 깨운다.
“단영아....”
“오빠.... 어떡해... 우리 수란이... 어떡해?“
단영이 기적의 팔을 잡고 엉엉 울었다.
벌써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수란의 목에 드리운 것 같았다.
당장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의사의 말.
그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어떡해....흑....”
단영의 물음에... 기적은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빨리 제정신을 차린 건 기적이었다.
멍하니 있다가 단영을 안고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었다.
하지만 그렇게 울어도 마음속 한켠에 돌을 얹어 둔 것처럼 무겁고 답답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잘 들어 단영아... 공여자... 금방 찾을 수 있을 꺼야... 그러면... 바로 수술하고... 수란이도 건강해 질 수 있어...“
“그렇지? 우리 수란이... 살 수 있지? 응 그렇지?“
“그래.. 단영아... 그러니까... 그만 울고... 이제 다시 올라가 봐야지...“
“응....”
그제서야 단영은 눈물을 닦는다.
“그래도... 바로 올라가지는 마. 세수도 좀 하고. 진정되면 올라가.“
“알았어...”
킁 하고 단영은 크게 훌쩍이고는 눈물을 애써 참으려고 노력했다.
끅끅 거림이 계속되었다.
“정말 걱정하지마.. 나도 따로 알아볼테니까... 의사가 겁준다고... 우리마저 겁먹지 말자... 수란이 분명히 나을 수 있어... 그러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긴 투병생활에서... 가장 힘든건 간병인이야... 그리고 환자도 간호하는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러니까 반드시 수란이 낮는다고 믿고... 힘내자...“
그리고 기적은 출근하기 위해 병원을 떠났다.
***
잔인한 선고를 받고도 시간은 잘만 흘렀다.
특히 수란은 3일이 지났음에도 계속 입원을 해야 하자 투정을 부렸다.
자기 몸 같지 않게 힘도 있고 생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맥아리 없고 매사 꾸벅꾸벅 졸던 그 모습으로... 수혈의 효력이 다한 것이다.
병원에서 면역치료라고 하는 것들.. 그 대부분은 효과가 없었다.
면역치료라고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수란의 합병증을 대비하기 위한 예방적 차원의 불과했다.
정작 수란의 병세를 호전시키는 것은 새빨간 수혈팩 뿐이었다.
수란도 처음엔 그냥 몸이 건강해 지는 것이라 믿었으나... 수혈팩을 맞고 나면 몸이 건강해 지는 것을 느끼고... 이 수혈팩 없이는 예전처럼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수혈팩을 맞는 다는 것 자체가 일다는 일반에서 벗어나는 상황이기에...
그 뒤로 수란 역시 퇴원하고 싶다고 단영을 보채는 일이 사라졌다.
엄마가 말해주진 않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눈치챈 것이다.
단영도 제 아이가 심각한 병에 걸렸음을 알아채고... 부모의 걱정을 덜기 위해 의젓하게 행동하는 그 모습에...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차라리 퇴원하고 싶다고... 나가서 뛰놀고 싶다고... 아무것도 모른채 보채고 칭얼대면 더 나았으리라...
***
그렇게 시간은 흘러 한달 뒤... 담당 의사가 단영과 기적 둘을 호출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어떤 걸 먼저 알려드릴까요?“
“네? 정말요 선생님?”
나쁜 소식이라는 말에 의사는 더 강조를 했지만... 단영은 좋은 소식이라는 말에 화색을 표했다.
좋은 소식이면... 골수이식?
기적의 말대로 공여자가 나타난 것일까?
“좋은 소식부터 알려주세요...”
기적은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의사가 저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 의사의 말을 전부 듣고 좋아해도 늦진 않을 것이다.
“수란 환자와 조직 적합도가 일치하는 분을 찾았습니다. 조직적합도 98%나 되시는 분입니다...“
“아! 그러면 선생님 수술은...”
“가능합니다...”
“그럼 선생님... 나쁜 소식은... 뭐죠?”
기적의 말에 단영의 눈매가 꿈틀댔다.
“수술은 할 수 없습니다...”
“왜요... 왜그렇죠 선생님?”
“공여자 분이 지금 하시는 일이 있어서... 지금 당장 골수 이식은 불가능 하다고....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하십니다.“
털썩
겨우 공여자를 찾았건만... 공여자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
“스케쥴상 힘드시다고 합니다... 해외 출장도 예정되어 있으시고... 병원측에서 설득을 해보았으나...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럼 언제...”
“...죄송합니다.”
언제 수술이 가능하다고 기약을 할 수도 없다.
주저 앉은 단영은 고개를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공여자가 있지만 수술은 못한다.
정말 희망고문이 따로 없다.
“선생님... 그 공여자분... 연락처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공여자 분의 신상명세를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게 개인정보 문제도 있지만... 보호자 분께서 그러시지는 않으시겠지만... 장기매매를 대상으로 금품거래를 하시면... 저희 병원측도 큰 타격을 받습니다...“
알려줄 수 없다는 의사의 말...
“제발... 어떻게 안되겠습니까?”
기적은 의사의 손을 붙잡고 애원했다.
단영은 넋이 나가 울기만 하고 있는 상태
자신이 공여자가 금방 나타날 것이라 호언장담 했다.
그 말 그대로 공여자는 금방 나타났지만 골수 이식은 거절한 상태... 이대로 이 공여자를 보낸다?
언제고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다시 공여자를 찾는 다고 보장도 할 수 없다.
2%다
수란과 조직적합도가 2%밖에 차이가 안난다.
기적도... 단영도... 수란이 재생불량성빈혈... 이 병에 걸리고 나서... 병에 대해 수많은 공부를 했다.
S병원의 의사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는 의사에게도 조언을 구하고... 인터넷으로 이것 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정도의 차이면 수술은 성공적이고 수란은 분명히 살 수 있음을 의사가 말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 하다니... 정말 그림의 떡이다.
눈 앞에 수란을 낫게 할 수 있는 방도가 있음에도... 그것을 해주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다.
“정말.... 어떻게 안되겠습니까...?”
기적은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의사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섹스돌 - <부제 : 피노키오의 눈물 Part 0> 13
의사는 기적과 단영의 마음을 속으로는 이해했다.
자신도 딸아이를 가진 아버지인데... 어찌 이해하지 못하랴... 당장 자신만 해도 딸아이가 아프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터였다.
그 딸아이를 가진 아버지의 부정이... 의사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건...”
“쉿...”
의사가 기적의 주머니 속으로 뭔가를 찔러 넣었다.
“몰래... 보세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적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이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의사는 몸을 돌려 가버렸다.
기적은 바로 단영을 추슬러 일어났다.
“단영아 그만 울고 따라와...”
“오빠... 어떻해...”
단영은 계속해서 울고 있다.
기적은 단영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둘은 기적의 차량에 올라탔다.
“오빠 이건...”
“그래...”
기적은 주머니에서 의사가 주머니에 넣어준 것을 꺼냈다.
꼬깃 꼬깃 접혀진 종이조가리.. 기적은 그 종이가 찢어질라 조심스레 펼쳤다.
그리고 그 종이엔 하나의 주소와 연락처가 적혀져 있었다.
“공여자의 주소야...”
“하지만 의사선생님이...”
“쉿....”
주차장에 단영과 기적 둘 뿐이지만... 기적은 단영에게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었다.
“원래는 알려줘서는 안돼... 선생님도 무리하신 거야.. 이거 알려지면... 우리나 선생님이나 무사하지 못해... 특히... 우리 수란이... 수술하지 못할 수도 있어...“
“....”
단영은 기적의 말에 잔뜩 긴장하여 입을 가로 막았다.
“전화해보자...”
기적은 핸드폰을 꺼내 적혀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귀에 대고 신호를 기다렸다.
단영도 잔뜩 기대한채 귀를 쫑긋했다.
그 모습을 보다가 기적은 스피커 폰으로 돌렸다.
뚜르르....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부재중 메시지...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컸다.
“한... 한번더 전화해봐...”
단영은 이대로 포기 할 수 없는 듯 기적을 재촉했다.
기적도 허탈해 하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아오니...
“집에 없나봐...”
종이에 적힌 번호는 핸드폰 번호가 아니었다.
맨 처음의 세자리.. 그것은 지역번호였다.
“점심이나 저녁에 다시 걸어보자... 이건... 단영이 네가 가지고 있어...“
단영은 기적에게서 주소지가 적힌 종이를 받고는 한참을 응시했다.
“오빠... 우리 여기... 가보자...”
“뭐? 무작정 찾아가자고?”
“응...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단영이 결심한 듯 말했다.
“단영아... 무작정 찾아간다고... 만난다는 보장도 없어... 너도 봤잖아... 전화도 받지 않아... 거기 가서 어쩌려고 그래...“
“그러면 어떻해!! 가만히 있어?”
다시 단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커져가는 단영의 언성에... 기적은 깜짝 놀라 단영을 바라본다.
“지금... 수란을 낫게 해줄 방법이 우리 손에 있어... 그런데... 그런데... 전화가 안된다고 그냥 기다려야해?“
“단영아... 진정해... 흥분하지마... 그건 너나 우리 수란한테... 좋지 않아...“
기적은 단영의 손을 꼭 잡았다.
“나도... 찾아가고 싶어... 하지만... 선생님이 그러셨잖아... 당분간 개인 사정 때문에 수술이 불가능 하다고... 그런데 무작정 찾아가서 부탁한다고... 해줄까?
그리고... 찾아가는 것도 문제야... 선생님이... 우리 사정 딱하게 여겨서... 이렇게 주소지랑 연락처를 알려줬는데... 가서 그 공여자가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뭐라고 해...“
“그래도... 그래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가서... 기다릴 꺼야... 그 사람... 올 때 까지... 기다릴 거야...“
“기다려서 어쩌려고... 수술해 달라고 떼라도 쓸 거야?“
“그래! 떼 써서 수술 해준다면... 할 거야... 무릎꿇고 빌어서라도... 빌고 또 빌꺼야!“
단영은 악을 쓰며 외쳤다.
그 절실함에 기적은 할말을 잊었다.
누구는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오빠가 같이 안가겠다면... 혼자라도 갈 거야...”
“단영아...”
기적은 지금 당장에라도 뛰쳐나가려는 단영의 손을 붙잡았다.
“그래... 가보자... 선생님에겐 정말 할말이 없지만... 그래도 일단 우리 수란이부터 살리고 봐야지...“
“오빠...”
기적이 단영을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지금 당장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수란의 안위다.
나중에 이 일로 인해 장기밀매로 철창신세를 진다 해도... 후회하진 않으리...
선의로 도와준 의사 선생님한테는 미안하겠지만... 일단은 그 선생님보다는 자신의 아이가 더 중요하다.
띵디딩띠디~
차를 출발하려고 하는데 기적의 핸드폰이 울린다.
“오빠 받아봐. 그 사람이야?”
“잠깐...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