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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솔직히 말하자면. 혈육의 정 같은 건 잘 모르겠군. 한낱 부자의 정을 들이대기엔 델티움의 태양은 너무 먼 존재니까.”



“그렇군요.”



“다만 난, 폐하께 일종의 부채감을 느끼고 있어. 그분은 사생아인 날 거둬주었고, 이렇듯 작위와 명예를 안겨 주었으니까. 내가 지금껏 받아 온 지원들을 생각한다면 폐하께 충성해서 보답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피곤한 듯 자신의 흑발을 쓸어 올린 라펠이 묵직하게 대꾸했다. 나름대로 최대한 진실하도록 노력한 대답이었다. 사실 그가 왕에게 가장 감사하는 부분은 작위도, 명예도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가냘프고 예쁜 여자였다.



왕이 만약 이 혼사를 강권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아네트와 결혼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그녀는 다른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저절로 이가 악물어지고, 주먹이 꽉 쥐어질 만큼 끔찍한 미래였다. 대체 자신은 언제부터 저 작은 여자를 이토록 좋아하게 된 걸까.



하지만 라펠이 제 마음을 자연스레 고백할 기회는 이미 물 건너가 버린 뒤였다. 좋게 말하면 타이밍이 안 맞았고, 나쁘게 말하면 삽질해 버렸다. 이런 라펠의 자괴감을 알 리 없는 아네트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고마워요 대답하기 싫었을 텐데, 나에게 말해줘서.”



“아니, 뭐. 싫을 것까진.”



대답을 마친 라펠은 초조한 마음에 미간을 찡그리며 아네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결혼 후 외박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라펠은 이상하게 안절부절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중요한 걸 밖에다 덜렁 내놓고 온 느낌이었다. 이러니 잠이 잘 올 리가 없었다.



덕분에 모처럼 아침형 인간이 된 라펠은 현관을 오락가락하며 내심 아네트를 기다렸다. 다행히 그녀는 성실한 아내답게 아침 일찍 돌아와 주었다. 그래서 기뻤던 것도 잠시, 라펠은 곧 기분이 오묘해졌다. 아네트가 지나치리만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저만 들뜨고, 저만 기다린 것 같아 라펠은 괜히 불퉁해졌다.



‘나랑 한 약속을 기억이나 하나?’



아네트는 집을 나서기 전, 못마땅해하는 자신을 달래며 약속했다. 돌아오면 라펠이 원하는 대로 이런 짓 저런 짓 다 하게 해 준다고 말이다. 딱히 그것 때문에 그녀를 기다린 건 아니었지만… 자신을 봐도 반가워하는 기색이 별로 없는 아네트의 모습에 괜스레 트집을 잡고 싶어졌다.



‘그가 왜 저렇게 날 보는 걸까?’



한편, 아네트는 간밤의 분주한 일정 때문에 그 약속을 잊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네트는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라펠의 표정을 오해했다. 초조해서 찡그린 그의 얼굴은 차가운 외모와 어우러져 한층 더 매섭게 보였다. 이를 본 아네트는 생각했다.



‘또 내가 못마땅한가? 아마도 개인적인 질문을 해서 저러겠지? 라펠이 화내기 전에 얼른 들어가자.’



어차피 할 말은 모두 끝난 후였다. 방어적인 미소를 지은 아네트가 재빨리 몸을 뺄 핑계를 대었다.



“음, 저는 유칼리를 좀 만나러 가야겠어요. 그녀가 요즘 매일같이 만들어 주는 건강약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있거든요. 그럼 이따 봐요.”



제 할 말만 끝마친 아네트가 냉큼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라펠 같은 고양잇과 맹수에게 등을 보이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계단을 밟으려던 그녀의 발이 어느 순간 허공에 붕 떠오르는가 싶더니, 세상이 반 바퀴 휙 뒤집혔다. 아네트는 어느샌가 그의 어깨 위에 대롱대롱 걸쳐져 있었다.



“꺄악! 무, 무서워요. 라펠! 내려줘요!!”



“내려주면 도망갈 거잖아? 돌아오면 나에게 해 주기로 한 게 있을 텐데. 어딜 도망가려고?”



조바심을 참지 못한 라펠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어떻게든 그녀와 지금 느껴지는 심리적 거리를 줄이고 싶은데, 불행히도 그는 연애 쪽에선 고자나 다름없는 몸이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도 못하고 기껏 하는 행동이 이런 핑계였다.



아네트를 거의 들쳐 매다시피 한 그가 다급한 걸음으로 침실을 향했다. 이미 맹수의 손아귀에 단단히 붙잡힌 아네트가 달아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안대로 두 눈이 가려진 아네트는 앞으로 묶인 양손을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곱게만 자라 온 그녀가 손목에 묶인 실크 스카프를 풀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의 그녀가 몸을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모습으로 벌거벗고 침대 위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라펠? 당신, 거기 있어요?”



아네트가 약간 소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찾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감상하던 라펠이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눈앞이 벌겋게 보일 지경이었다. 저 여자는 어딜 봐도 왜 저토록 먹음직스러운 걸까.



성큼성큼 다가간 라펠이 그녀를 밀어 넘어트리고, 두 다리를 벌려 그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발그레한 꽃잎 사이로 자리 잡은 클리토리스가 이미 약간 달아올라 있었다. 이를 본 라펠이 피식 웃었다. 그는 훈련 때문에 굳은살이 배긴 엄지로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그 사랑스러운 돌기를 문질렀다.



“아…….”



아네트가 안대 밑으로 드러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까칠한 손끝이 예민한 곳을 더듬자 조금 쓰라린 것 같았다. 그 모습을 흘끗 본 라펠이 그녀의 입술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빨아.”



짧아서 다소 냉혹하게까지 들리는 그 목소리에 아네트는 순순히 복종했다. 그녀가 분홍색 혀를 내밀어 그의 손가락을 핥고, 적셨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라펠의 눈길이 점점 더 질척해졌다. 청초하고 단정한 얼굴로 안대를 쓰고, 자신의 손가락을 빠는 그녀의 모습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어느 정도 축축하게 젖자, 라펠이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그리고 그녀의 다리 사이를 더듬다 멈칫했다. 아네트가 부끄러움에 다리를 모으려고 했으나, 라펠의 강인한 손아귀가 다리를 더 크게 벌렸다. 머리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관통했다.



“젖었군. 내 손가락을 빨면서…… 여길 적신 건가?”



라펠의 손가락이 이미 꿀물을 흘리고 있는 아네트의 음부 위를 천천히 문질렀다. 안대로 차단당한 시야 때문인지, 다리 사이에서 들려오는 젖은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그 손가락 끝이 민감한 질구와 클리토리스 위를 훑고 내려가자, 아네트의 허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러자 그 위를 보란 듯 지분대던 라펠의 손가락이 이윽고 안쪽으로 헤쳐 들어왔다.



“흐윽!”



“왜 이렇게 좁아? 몇 번이나 처박았었는데.”



말랑한 구멍 입구를 비집고 들어온 그의 손가락들이 내벽을 훑었다. 그것들이 이내 능숙하게 아네트의 약한 부분을 찾아내 위를 집요하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곳을 누를 때마다 자신의 안쪽이 뜨겁게 달라붙어 움찔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미친 듯이 환영해 주는 안쪽의 조임에 라펠이 결국 으르렁거렸다.



“하여튼 야하긴. 기다려, 지금 넣어 줄 테니까.”



그러나 한계까지 잔뜩 팽창한 성기의 머리 부분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라펠은 혀를 차며 자신의 엄지로 딱딱하게 부푼 귀두를 꾹 눌러 밀어 넣었다. 안쪽을 꽉꽉 채우면서 긁어 들어오는 귀두의 움직임에 아네트가 소스라치듯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허리를 굽힌 라펠이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 주는 체하며 그녀를 더 단단히 붙들었다. 기어이 자신의 것을 끝까지 처박은 라펠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느껴져, 아네트? 당신이 내걸 아주 잘라먹을 듯 조이고 있어.”



그가 보란 듯 허리를 움직여 안쪽 깊은 곳을 쿡 찔렀다. 한계까지 들이박힌 거대한 성기가 자신의 몸을 통째로 갈라버릴 것 같아서 겁이 더럭 났다. 아네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진저리를 쳤다. 그러자 그녀의 뺨을 움켜쥔 라펠이 고개 숙여 입을 맞췄다. 혀와 혀가 질척하게 얽힌 순간, 그가 천천히 허릿짓을 시작했다.



“아, 흐읏…… 응! 하윽!!”



귀두까지 잡아뺐다가 뿌리까지 깊숙이 박아 오는 움직임이 저돌적이었다. 라펠이 거칠게 들이박을 때마다 몸이 조금씩 위로 밀렸다. 그러자 그가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허리를 잡아 더 깊이 삽입했다. 뜨겁고 단단한 성기가 안쪽을 찔러 파헤칠 때마다 눈앞에 불이 번쩍번쩍 들어왔다.



“흐으으, 아흑! 아! 너무, 깊어!!”



아네트가 도리질을 하며 묶인 양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었다. 라펠은 이제 숫제 자신의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위에서 내리박듯 삽입하고 있었다. 그의 것이 너무 커서 안쪽의 주름이 다 펴지는 것 같았다. 모든 예민한 곳을 닳아 없어지도록 문지르는 그 거친 움직임에 눈앞이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의 묶인 팔을 시트 위로 내리누르고, 더 깊이 처박자 아네트는 결국 가벼운 오르가즘을 느꼈다. 찰박찰박 부딪혀 오는 그의 도드라진 성기 윗부분이 자신의 클리토리스를 짓눌러 올 때마다 몸이 벌벌 떨렸다.



“흐윽, 아으으으……!!”



절정에 도달해 제멋대로 튕겨 오르는 몸을 라펠이 강하게 짓눌렀다. 그리고 잔뜩 조여 오는 다리 사이에 자신의 것을 더 빠르게 쑤셔 넣었다. 예민해진 상태에서 지나친 쾌감이 독처럼 주입되어 온몸에 퍼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들어가는 것 같아서 아네트가 흐느꼈다.



“그만, 그만!! 싫어!!”



“싫긴. 밑으로 줄줄 싸고 있는데. 내일 메이드가 시트를 갈면서 깜짝 놀라겠군. 당신이 하도 흥건하게 적셔 놓아서 말이지.”



라펠은 관계 도중 아네트가 싫다고 하면 더욱 못되게 구는 경향이 있었다. 그녀의 귓바퀴를 자근자근 깨물며 수치스러운 말들을 속삭인 그가 자신의 몸 위에 아네트를 태웠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위에서 기승위로 마구 찔리며 허리를 비틀고 있었다. 안대 밑으로 잔뜩 달아오른 뺨과 할딱이는 입술, 출렁이는 새하얀 젖가슴이 보기 좋았다. 손을 뻗어 그 소담한 가슴을 움켜쥔 라펠이 소리 내어 웃었다.



“지금도 봐, 허리를 흔들고 있는 건 당신 쪽이라고. 꼭 발정 난 암말 같군.”



“아니야, 아! 흐윽! 아아앙!!”



아래에서 깊게 쳐올리던 라펠이 한 손가락을 그녀의 다리 사이로 가져갔다. 라펠의 두꺼운 몸 위에 얹혀진 그녀의 다리는 중심을 잡느라 양옆으로 한껏 벌어져 있었다. 그는 어렵지 않게 연결부 바로 위에 도드라진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찾아낼 수 있었다. 성기를 슬슬 쳐올리면서 그 클리토리스를 가볍게 꼬집자, 아네트가 고개를 젖히며 경련했다.



“싫어, 손… 아아! 떼 줘요, 아읏!! 흑!!”



그녀가 묶인 손으로 어떻게든 라펠의 팔을 밀어내려고 바둥거렸다. 하지만 그가 또 푹푹 깊게 찔러 올리자, 몸에 힘이 탁 풀려 저항할 수 없었다. 한계까지 벌어진 질구를 연신 파고들며 클리토리스를 계속 문지르자, 안쪽이 잔뜩 조여들었다.



이제 아네트는 거의 찔릴 때마다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다리를 더 크게, 더 넓게 양쪽으로 벌리고 안쪽을 퍽퍽 찔러댈 때마다 다리 사이에서 맑은 애액이 튀었다. 그녀는 이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 야한 신음을 들을 때마다 귀가 녹는 것 같았다.



라펠은 그 지독하게 잘 느끼는 몸을 움켜쥐고 더 빠르게 들이박았다. 쳐올릴 때마다 비벼지는 안쪽이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러다가 머릿속이 진탕 녹아내려 엉망이 될 것 같았다. 굵고 뜨거운 것이 조여 오는 내벽을 헤치며 더 깊이 찌르고, 더 엉망으로 쑤셨다. 끝없이 굳건하게 찔러 올리던 그것이 뜨거운 액체를 내뿜으며 사정한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흐읏, 하으으으…….”



안대를 벗긴 라펠이 엉망진창이 된 아네트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입을 맞췄다. 아래도, 위도 잔뜩 적시고서 우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자극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발갛게 물든 그 눈시울을 핥는 라펠의 숨결이 점차 가빠졌다.



“쉬잇, 울지 마. 한 번만 더 싸고 놓아줄 테니까.”



“싫, 싫어…….”



체력이 한계에 달한 아네트가 흐느끼며 침대 위를 기어갔다. 여기서 더 하면 정말로 죽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라펠이 풀어준 건 고작 안대뿐인지라, 묶인 손으로 기어갈 수 있는 거리는 한계가 있었다.



기어가는 아네트의 한쪽 다리를 느긋하게 끌어당긴 라펠이 그녀의 허리를 내리눌렀다. 그리고 파들거리는 그 엉덩이를 붙잡고서 또다시 깊이 삽입했다. 아직 남아 있는 오르가즘의 여운 때문에 경련하는 질구를 쑤시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땀이 송골송골 밴 그녀의 등줄기를 길게 핥은 라펠이 이번엔 접 붙는 개처럼 허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날, 아네트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