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라일린은 아는 정보를 바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는 기본적으로 조금 꼬인 성격이었고, 마음에 드는 사람일수록 좀 더 짓궂게 대하는 편이었다. 그랬기에 라일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아네트의 아픈 구석을 태연하게 푹 찔렀다.
“그전에 한 가지 여쭙고 싶군요. 왜 부군 되시는 분께 직접 묻지 않으십니까?”
라일린의 질문에 아네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도 마음 같아선 라펠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라펠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진 안 봐도 뻔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이미 눈독을 들이고 있는 와중에, 아네트마저 광산에 대해 캐묻는다면…… 라펠이 과연 무슨 오해를 하겠는가?
‘내가 친정과 편을 먹고, 자신의 광산에 눈독을 들인다고 의심할지도.’
안 그래도 라펠은 그녀의 친정을 싫어했다. 하지만 라펠이 자신의 사생아 출신을 암만 싫어해도 바꿀 수 없듯이, 아네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부디 라펠이 언젠가 이 점을 이해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 전에 자신이 못 견디고 그를 떠나는 게 빠르겠지.
지금으로선 이 길이 좀 더 요원해 보이긴 했다. 등을 돌리고 어디론가 가 버린 라펠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아네트는 자신을 아프게 찌른 라일린의 질문에 굳이 대꾸하지 않고, 입술을 꼭 다물었다.
먹이를 주지 않기로 한 아네트의 대처는 훌륭했다. 무시당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라일린의 미소가 좀 더 짙어졌다. 그는 아네트가 쉽지 않은 여자라서 더욱 흥미로웠다. 자신이 색기를 조금만 흘려도 술술 걸어들어오는 여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랬기에 라일린은 제가 아는 정보를 기꺼이 먼저 꺼내 들기로 했다.
“놀랍더군요. 부군께서 소유한 철광석 광산은 이 델티움 총 채굴량의 55%가량을 차지한 알짜배기입니다. 예전엔 철기의 가공 자체가 지나치게 까다로웠기에 수요 자체가 적었고, 고로 철광석 광산도 별다른 메리트가 없었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이른바 시대를 잘 탔달까요? 덕분에 광산의 자산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쭉쭉 올라가고 있어요. 조만간 다이아몬드 광산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가 될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아네트는 내심 놀랐다. 그녀 또한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걸 알음알음 알고는 있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정원사들의 청동 갈퀴가 철제로 바뀌었고, 메이드들이 바닥에 눌어붙은 오물을 긁어내던 스크래퍼 날도 반짝이는 철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시대는 이제 바야흐로 평민들에게도 철기 도구가 보급되는 세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라펠은 그 변화의 열쇠를 손에 쥔 남자였다. 심지어 아주 빠방한 황금 열쇠로 말이다.
‘과연 셀그라티스 폐하도 이 사실을 미리 짐작하고, 라펠에게 철광석 광산을 주신 걸까?’
아네트는 문득 궁금해졌다. 셀그라티스 왕이 자신의 사생아인 라펠을 아낀다는 소문은 유명했다. 하물며 라펠을 공적인 자리에서도 루드비히와 비교할 지경이니, 말이 안 나오는 게 이상했다. 덕분에 섬세한 감성의 루드비히는 매일같이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부친의 편애 앞에서 루드비히가 라펠에게 열등감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루드비히 전하가 몸치만 아니었어도…… 상황이 좀 더 나았을 텐데.’
아네트는 혼자서도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루드비히의 놀라운 운동 신경을 떠올리며 한숨을 삼켰다. 그 정도로 몸치인데, 정작 배다른 형제인 라펠은 소드 마스터에 준하는 실력자라니. 정말로 유전의 장난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러니 루드비히가 눈에 쌍불을 켜고 라펠을 견제하는 것이리라.
어쨌든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네트는 애써 놀란 기색을 감추며 차분한 얼굴을 유지했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라일린에게 슬쩍 던졌다.
“그 광산이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라면, 매각 제의도 많이 들어왔겠군요. 누구나 가치 있는 것을 사들이길 원하니까요. 그렇지요?”
“역시 현명하십니다. 그리고 고객님께서 궁금하신 건 아마…… 그 리스트에 바이에른 공작가가 포함되어 있느냐, 아니냐겠지요?”
라일린이 가늘게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빛을 등지고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묘하게 색정적이면서도 위험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라일린과의 거래는 언제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아네트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의연하게 고개를 들어 라일린을 마주 보았다.
“맞아요. 그걸 알고 싶었어요. 그러니 부디 대답해 주세요. 제 친정에선 라펠에게…… 광산을 넘기라는 제의를 했었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주 여러 번 했었지요. 바이에른 공작가에서 철광석 광산을 원하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라일린의 대답을 듣는 순간, 아네트는 자신의 발밑이 아득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불길한 추측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부친인 알라만드는 사위의 철광석 광산을 탐냈다. 이는 단순히 재산이 좀 더 늘어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델티움 총 채굴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광산을 손에 넣는다면, 그만큼 정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올라갔다. 알라만드는 이 점을 노리고 라펠에게서 광산을 빼앗고자 하는 게 틀림없었다.
아마 전생에도 이 점은 변함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펠은 전생에도, 현생에도 아네트에게 이 부분에 대해 티를 낸 적이 없었다. 그 숱한 부부싸움과 지독한 말다툼을 거치면서도 말이다. 이 사실을 회귀 후에야 깨닫게 된 아네트의 입에서 외마디 탄식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충격에 빠진 아네트의 발걸음이 자연히 느려졌다. 그녀는 멍해진 나머지 자신의 발 앞에 웅덩이가 있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최고급 양가죽 부츠를 신은 아네트의 발이 물웅덩이에 빠지기 직전, 라일린의 팔이 뱀처럼 그녀의 허리를 휘감았다.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그는 한 팔로도 아네트를 손쉽게 들어 올렸다.
“잠시 실례.”
외간 남자의 접촉에 화들짝 놀란 아네트가 그제야 현실로 되돌아왔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네트의 몸은 그 새에 허공을 날았다. 웅덩이를 지나친 후, 라일린이 곧바로 그녀를 마른 땅 위에 내려 주었다.
“세상에, 라일린 씨!”
놀란 아네트가 저도 모르게 타박하듯 라일린을 불렀다. 그러자 그가 약삭빠르게도 아네트의 허리를 감았던 팔을 잽싸게 풀어버렸다. 시치미를 딱 뗀 라일린의 얼굴이 ‘무슨 일 있었나요?’ 하는 식으로 무해하게 웃었다.
“숙녀분의 발이 빠질까 봐 걱정되어서 말입니다.”
“……라일린 씨.”
아네트는 그의 여우 같은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다. 한숨을 섞어 그의 이름을 부르자, 화사한 미인의 얼굴이 만개한 미소를 머금고서 순진한 체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네트는 이에 동요하지 않고 제법 따끔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배려는 감사하지만 두 번 다신 이러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귀하신 고객님의 뜻대로.”
라일린이 한 팔을 들어 올리며 능청스럽게 절을 하는 시늉을 했다. 이를 본 아네트는 결국 한숨을 쉬면서도 웃고 말았다. 그는 확실히 치고 빠지는 걸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해내는 인간이었다. 아마 타고난 눈치와 센스, 매력이 어우러진 결과물이겠지.
“오늘 일은 정말 감사했어요, 라일린 씨. 보수는 조만간 ‘세크리트’ 길드 앞으로 보내드리죠. 그럼 이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돌아서는 아네트의 자태는 꼭 예법 교본처럼 완벽했다. 라일린은 감탄 어린 눈으로 그녀의 우아한 뒷모습을 핥듯이 바라보았다. 그들 부부의 사이가 나쁘다는 정보를 들어서 안심했던 게 엊그제거늘, 아무래도 그게 다는 아닌 모양이었다. 오늘 의상실까지 동행한 걸 보면 말이다.
라일린은 저 멀리 아네트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입술을 핥으며 돌아섰다. 상처받은 귀부인을 위로할 품을 준비했는데, 아직은 쓸 때가 아닌 듯하여 아쉬웠다. 과연 이 흥미로운 고객의 최종 선택은 무엇이 될까? 라일린은 몹시 궁금했다.
* * *
“아, 라펠… 흐윽! 제발, 조금만 천천히…….”
다 쉰 목에서 흘러나오는 애원은 애처로웠지만, 그만큼 남자의 정욕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었다. 라펠은 힘들어하는 아네트의 새하얀 엉덩이를 더 세게 움켜쥐고 위로 들었다. 조금만 힘을 줘도 손쉽게 움직이는 그녀의 몸은 지나치게 달콤해서 꼭 설탕 인형 같았다. 이토록 맛있는 게 이렇게나 약하다니, 반칙 아닌가. 욕정 때문에 새빨개진 머릿속에서 별별 쓸데없는 생각이 다 떠올랐다.
라펠은 자신의 손자국이 발갛게 남은 그 자극적인 엉덩이 사이로 자신의 물건을 파묻었다. 마치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황홀해서 저절로 그릉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조금 더 거칠게, 조금 더 잔뜩 하고 싶은데 그랬다간 부서질까 봐 자제해야 했다. 자연히 라펠의 어금니에는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아으응!”
지나치게 깊은 삽입에 아네트가 훌쩍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고개를 숙인 라펠이 그녀의 눈물 젖은 뺨을 핥고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다리 사이로 파고든 거대한 물건이 아래를 푹푹 찌르며 다리 사이를 헤집었다. 연약한 주름들을 파헤치며 느끼는 곳들을 연달아 찌르는 그 움직임에 아네트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눈앞이 새하얘질 정도의 쾌락이 후두둑 퍼져나갔다.
이대로 가다간 복상사를 당할 것 같았다. 아네트는 저도 모르게 그의 흉흉한 물건을 피해 앞으로 기어갔다. 그러자 라펠이 자비 없이 그녀의 가냘픈 팔목을 뒤로 잡아당겨 더욱 바짝 끌어당겼다. 이 때문에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그의 물건이 안으로 짓쳐들어왔다.
“흐읏!! 아!!”
다리 사이가 용암처럼 뜨겁게 녹아내려 출렁이는 것 같았다. 그 사이로 왕복하는 성기의 움직임이 자지러질 만큼 기분 좋았다. 아네트는 이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저도 모르게 허리를 흔들었다. 차라리 이 지독한 쾌감이 한시라도 빨리 끝나길 바랐다. 그러자 등 뒤에서 그녀를 짓누르고 탐하던 짐승이 으르렁거렸다.
“어디서 그런 잔망 떠는 걸 배워서는.”
그와 동시에 뒤에서 쑤셔박히는 성기의 움직임이 더욱 격렬해졌다. 따가운 듯하면서도 황홀하기까지 한 쾌락이 불붙듯이 번져나갔다. 흔들리는 몸 때문에 숨이 턱 끝까지 턱턱 차오르면서 눈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쾌감 때문에 다리가 풀려 제대로 조여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거대한 성기는 좁은 안쪽이 불만스러운 듯 꾸역꾸역 헤쳐 밀고 들어왔다.
“안이 아주 난리가 났어, 아네트. 질질 흘리고 있다고.”
라펠이 자신의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뽑아내며 못되게 속삭였다. 그의 손끝이 자신의 것을 삼키느라 도톰하게 부어오른 질구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렸다. 그 감촉에 아네트가 진저리를 치며 흐느꼈다. 이 때문에 내벽이 바짝 조여들자, 라펠이 신음을 흘리며 더욱 거세게 움직였다.
“으, 흐윽, 아!! 흐으으으……!!”
굵은 성기가 가장 깊은 곳을 사납게 짓쳐 들어오며 아네트의 약한 곳을 뭉개듯이 자극했다. 그곳에서 경련에 가까운 열락이 피어올랐다. 이미 밤의 기쁨을 알아버린 몸이 탐욕스럽게 성기를 빨아들이며 더 큰 쾌감을 쫓았다. 라펠의 성기가 또다시 그녀를 깊게 꿰뚫고, 그의 단단한 손끝이 다리 사이의 클리토리스를 튕기듯 문질렀다. 그 순간 아네트는 절정에 도달해 몸을 뒤로 젖히며 경련했다.
“크윽……!”
내벽의 강한 조임에 이끌리듯 라펠이 그녀의 안쪽에 파정했다. 아네트의 젖혀진 흰 목을 깨물며 자신의 것을 더욱 깊이 처박는 그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원초적이었다. 마치 접 붙는 짐승들처럼 말이다.
잔경련이 남은 몸을 침대 위에 늘어트린 아네트가 기절하듯이 눈을 감았다. 라펠과의 섹스는 좋긴 했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그는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남자였다. 덕분에 오랫동안 시달린 아네트의 의식은 매우 혼곤해졌다.
“자는 건가?”
라펠이 미간을 찡그리며 아네트의 젖은 뺨을 조심스레 툭 건드렸다. 그녀는 아직 잠들면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