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아네트는 배가 터질 듯한 압박감에 겁을 먹고 훌쩍였다. 여전히 그의 것을 받아들이는 건 힘겨웠다. 여린 점막이 한계까지 벌어져서 당장이라도 찢어질까 봐 무서웠다. 그러나 이미 불이 붙은 라펠은 이를 모른 척하며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하윽! 라, 라펠!! 조금만 천천히……!”
두툼한 귀두가 안쪽을 벌리며 비빌 때마다 둔탁한 통증과 쾌감이 함께 피어올랐다. 아네트가 울먹이며 그에게 매달리듯 손을 뻗었다. 그러나 라펠은 매정하게도 그 손을 잡아서 침대 시트 위에 짓눌렀다. 그리고 좀 더 빠르게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굵은 성기가 안쪽을 쑤시면서 눈앞이 번쩍번쩍할 만큼의 자극을 안겨주었다. 그것이 아까 찾은 아네트의 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찌르기 시작하자, 아네트의 숨소리가 좀 더 가빠졌다. 라펠은 전생에도 현생에도 똑같이 절륜한 남편이었다.
이제 아픔은 거의 다 가신 후였다. 민감한 곳을 쳐올리는 귀두의 감촉이 황홀할 만큼 기분 좋았다. 이제 라펠은 그녀의 자궁 끝까지 처박을 기세로 격렬하게 때려 박고 있었다. 가장 깊숙한 곳까지 쑤셔 박히는 성기가 안쪽을 후벼 팔 때마다 아네트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터졌다.
“하으, 흣! 아아!!”
커다란 것이 그녀의 음부를 들쑤시고 또 들쑤셨다. 약한 곳을 자극당한 내벽이 경련하며 그의 성기를 욕심껏 조였다. 제 안을 파고드는 성기의 두께와 모양까지 낱낱이 느껴질 만큼 강한 조임이었다. 그러자 흥분한 라펠이 숫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것을 더 깊이 박아 넣었다.
“흐으윽!”
아네트의 눈앞이 새하얘지며, 삽입으로 인한 첫 절정이 닥쳐왔다. 오르가즘 때문에 덜덜 떨리는 몸이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굳어졌다. 그 강한 조임에 라펠은 말 그대로 이성을 잃어버렸다. 그는 미친 듯이 조여드는 내벽을 가르며 자신의 것을 박아 넣었다.
가고 있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안쪽을 자극당하자, 아네트는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았다. 그녀는 흐느끼며 도망치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라펠이 그녀의 손을 모아 쥐고 시트 위로 짓눌렀다. 짐승 같은 남자에게 꼼짝없이 붙들린 그녀는 몸부림을 치면서 지독한 쾌감에 울고 또 울었다.
드디어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쥔 라펠이 성기를 처박으며 가장 깊숙한 안쪽에 파정했다. 그는 심지어 사정하는 동안에도 허리를 얕게 흔들며 그녀의 안쪽을 자극했다. 그럴 때마다 잔뜩 젖은 음부에서 찰박이는 소리가 나며 라펠의 음심을 부추겼다.
“후우…….”
욕정을 한번 해소한 라펠이 자신의 성기를 빼냈다. 그는 이대로 아네트를 돌려 눕히고 한 번 더 할 작정이었다. 인형처럼 예쁜 얼굴을 내려다보며 하는 것도 좋았지만, 눈물로 젖은 그녀의 속눈썹과 잇자국이 남은 입술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라펠이 그녀를 돌려 눕히려고 허리를 숙인 순간, 그의 예민한 코끝에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라펠은 본능적으로 피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이윽고 라펠의 날카로운 눈매가 처음으로 크게 벌어지며, 놀란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
피가 흘러나오는 곳은 다름 아닌 아네트의 다리 사이였다. 그녀의 옅은 금빛 음모는 투명한 애액과 피로 엉켜서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아까 혀로 실컷 풀어주었으니, 지금 와 새삼스럽게 피가 날 이유가 없었다.
그랬다. 왕세자비가 되려고 루드비히에게 몸을 던진다던 아네트는 정말로…… 그런 천박한 여자가 아니었다. 이를 깨달은 라펠의 눈동자가 충격과 혼란으로 거세게 흔들렸다. 자연히 관계를 더 지속할 생각도 사그라들었다.
라펠의 심경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아네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대단히 정력적인 남자였고, 전생에도 한두 번으로 끝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지친 아네트가 울면서 기어 도망쳐도 기어이 그 뒤에서 다시 삽입하는 짐승 같은 남자였다. 따라서 아네트는 당연히 그가 더 하려고 들 줄 알았다.
‘어떡하지? 좀 아픈데…….’
아네트는 고민했다. 관계 도중엔 쾌감 때문에 잘 몰랐는데, 그가 빠져나간 곳이 점차 쓰라려 왔다. 역시 첫 관계는 아플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아네트는 만약 자신이 더 못하겠다고 하면 라펠이 들어줄까, 걱정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라펠은 예상 밖으로 그녀에게 덤벼 오지 않았다. 의아해진 아네트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치를 살폈다. 뜻밖에도 라펠의 시선은 자신의 다리 사이에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그 흔들리는 눈동자를 본 순간, 아네트는 깨달았다. 그는 이제야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눈치챈 것이었다.
라펠은 묵묵히 아네트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등을 돌려 침대 밑으로 내려섰다. 그 몸짓은 평소와 달리 다소 풀이 죽어 있었다.
이를 본 순간, 아네트는 본능적으로 지금이 기회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 틈을 타 라펠에게 마음의 빚을 좀 지워 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좀 반성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게 제가 말했었잖아요…… 정말 너무해요.”
아직까지 눈물이 그렁한 눈을 든 아네트가 부러 원망하듯이 말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뒤돌아선 라펠의 등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안 그래도 충격 때문에 골이 울리는데 아네트의 원망까지 더해지니, 죄책감이 두 배로 늘었다.
라펠은 미간을 팍 찡그리며 자신의 혀를 지그시 깨물었다. 하마터면 입 밖으로 사과의 말이 튀어 나갈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과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상황 파악이었다. 아네트는 정말로 누명을 쓴 걸까?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전제가 흔들리자, 라펠에게 남은 건 지독한 혼란뿐이었다.
다행히 잊고 있던 증오가 튀어나와 라펠의 이성을 바로잡았다. 그는 아네트의 금발을 노려보며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바이에른 가의 인간들은 혈관에 푸른 피가 흘러서, 교활하기 그지없는 족속이었다. 이 점을 떠올린 라펠이 차게 대꾸했다.
“좋아. 그대가 루드비히 왕세자에게 몸을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뿐이야.”
아네트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곧바로 알아들었다. 사실 왕세자에게 몸을 던진다는 누명은 별 것 아니었다. 그들은 당시 혼담이 오가는 사이였고, 아네트는 정말로 왕세자비가 되기 직전이었다. 그러니 말 많고 탈 많은 델티움 사교계에서도 그쯤은 충분히 눈감아 줄 만한 일이었다.
사실 아네트의 미래를 박살 낸 진짜 누명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라펠은 현명하게도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세 가문만이 알기로 한 비밀이었으니까. 결혼식장의 하객들 반응을 보아하니, 다행히 그 ‘비밀’은 잘 지켜지고 있는 듯했다.
‘과연 그것도 진실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
라펠은 차갑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네트가 자신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라펠은 곧 자신의 섣부른 행동을 후회했다.
정사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는 여자의 알몸은 자극적이었다. 본디 도자기 인형처럼 하얬던 아네트의 뺨과 눈가는 꼭 꽃물이 든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긴 금발 사이로 슬쩍 드러나는 젖가슴만으로도 그의 하반신에 또다시 피가 몰릴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라펠을 동하게 만든 건, 아네트의 다리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흰 정액이었다. 애액과 약간의 피가 뒤섞인 그것은 지독히도 음탕하고 야해 보였다. 하지만 가장 질이 나쁜 건, 이 와중에도 지나치게 순진해 보이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아네트의 눈동자였다.
“라펠…….”
아네트는 라펠이 어떤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몰랐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누명을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를 불렀다. 고개를 든 아네트는 어쩐지 화가 나 보이는 라펠의 얼굴을 마주하고 당황했다.
‘왜 저러지?’
혹시 한 번 더 하려는 걸까. 아네트는 불길한 가능성에 몸을 떨었다. 여기서 더 하기엔 다리 사이가 너무 쓰라렸다. 어차피 누명은 지금 당장 내보일 증거도 없었으니, 다음 기회에 해명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든 흥분한 라펠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재빨리 울상을 지은 아네트가 가냘픈 목소리로 라펠에게 호소했다.
“나 아파요, 라펠. 다리 사이가 너무 쓰라려서…….”
그러니 그만하자는 얘기였다. 라펠이 시선이 다시 한번 그녀의 다리 사이로 가 닿았다. 타이밍 좋게도 그 순간, 새하얀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던 체액이 툭 하고 방울져 떨어졌다. 이를 본 라펠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더니 그대로 방을 뛰쳐나가 버렸다.
쾅―!
라펠이 화풀이하듯 세게 닫은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울렸다. 아네트는 너무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문을 쾅쾅 닫는 저 못된 버릇은 반드시 고쳐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방을 뛰쳐나간 라펠은 이를 알지 못했다. 그는 복도를 성큼성큼 걸으며 끊임없이 머릿속을 비우려 노력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아서 기어이 욕설이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바이에른, 요망한 아네트 바이에른!”
쓸데없이 야하고 예쁜 아네트의 알몸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성욕이 울부짖으며 그에게 다시 되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아네트가 아프다고 울든 말든, 그 가냘픈 몸을 짓누르고 마음껏 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펠은 왜 자신이 그러지 못하는지 궁금했다. 진심으로.